Escaping the Past Tense: The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는 ~였지’라는 과거의 유령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보낼까요? 과거의 나, 과거의 실패, 혹은 그때 입었던 상처가 지금 내 삶의 모양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말이죠. 과거라는 시제에서 벗어나기(Escaping the Past Tense)가 다루고자 하는 이 끈질긴 굴레는, 단순히 후회스러운 기억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의 존재 자체에 관한 깊은 문제이자, 영혼과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기도 하죠.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벽돌을 굽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어제의 실패와 어제의 모습, 그리고 어제의 한계라는 먼지 쌓인 무게 아래서 고단하게 노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참 묘한 속박입니다. 나를 가둔 쇠사슬이 외부의 압제자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만들어졌으니 말이에요. 지나간 것들이 남긴 찌꺼기가 아니라, 영원히 현존하시는 생수의 강물로 정의되는 삶. 그런 더 깊은 진실, 더 자유로운 현실이 우리에게도 허락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답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과 모세가 만났던 그 경이로운 신학적 진리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소명이 너무 벅차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수천 년을 울려 퍼질 대답이 돌아왔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출애굽기 3:14). 이건 그저 가벼운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기 존재와 영원한 현존을 드러내는 존재론(Ontology, 존재의 본질에 관한 설명)적인 선언이죠. 하나님은 ‘과거의 나였던 분’도, ‘미래의 나일 분’도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지금 계시는 분(I AM)’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시간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이전의 상태나 미래의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실재 그 자체입니다. 이 거룩한 ‘지금 계심’은 예레미야가 말한 ‘터진 웅덩이’와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그 금 간 웅덩이들은 생수를 담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노력과 실망이 만들어낸 고인 물만 담고 있을 뿐이죠. 과거라는 시제가 주는 집요한 통증을 해결할 핵심 열람은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아의 닻을 변치 않고 늘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라는 현실에 다시 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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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존재론, 그리고 과거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법

‘스스로 계신 분(I AM)’으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정체성과 자유를 찾으려 애쓰는 우리 인간에게 아주 혁명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순수하고 온전한 존재 그 자체라면, 그분이야말로 모든 참된 존재의 근원이자 지탱하는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쌓았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 혹은 어디서 실패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그저 ‘계시는’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가장 진실한 정의를 찾게 되죠. 이 신학적 토대야말로 과거라는 시제에서 벗어나기를 위한 가장 강력한 틀이 되어줍니다. 과거의 잘못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치심의 무게를 생각해보세요. 수치심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네가 저지른 그 일, 바로 그 자체야.” 죄책감이 “네가 잘못을 저질렀어”라고 말한다면, 수치심은 더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본질 자체를 규정하려 들죠. 하지만 하나님의 ‘지금 계심’은 이 목소리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는 우주적인 망각 속에 지워지는 게 아니라, 구속되고 변화되어 결국 새로운 정체성으로 대체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이 ‘새로운 피조물’은 옛 모습을 조금씩 고쳐 쓰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주된 정의가 시간 속의 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원한 현재로부터 나오는,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 옮겨지는 근본적인 재정립입니다.

이런 이해는 단순히 심리학적인 관점 바꾸기를 넘어섭니다. 이건 우리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 실재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정리한 문답서)은 묻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이렇게 시작되죠.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 선언은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꿉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나의 정체성은 요동치는 나의 성과나 후회스러운 결정, 혹은 내가 입은 상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언제나 ‘지금 계시는’ 그분 안에서 발견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연대기적인 기록의 폭정에서 해방됩니다. 인간의 연약함이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지금 누리는 교제로 정의되는 영적인 자서전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죠. ‘과거의 나’에 뿌리를 두었던 자아 정의가, 영원한 ‘I AM’과 공명하는 ‘그리스도 안의 나’로 옮겨가는 이 놀라운 변화를 우리는 이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