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nantal Advocacy: Justice and Mercy in the Modern World

요즘 세상, 참 쉽지 않죠? 여기저기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끝없는 정치적 싸움에 지쳐가다 보면 ‘정말 신념 있는 옹호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마치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저희는 **’언약적 옹호(Covenantal Advocacy)’**라는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세상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과는 결이 아주 다르거든요. 보통 세상에서의 옹호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집단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곤 하죠. 때로는 강요나 분열을 도구로 삼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의 부름은 다릅니다. 우리는 금방 사라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거든요.

하나님의 명령: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

맨해튼 코너스톤 장로교회(Manhattan Cornerstone Presbyterian Church)에게 옹호란, 여유 있을 때나 하는 선택 과목이 아니에요. 이건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 그 자체이자, 삶의 기본 설정값이죠. 우리는 세상을 좁은 시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교회가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건, 단순히 사회적인 행동을 넘어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수직적 명령’이기 때문이에요. 성경 속 하나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시면서도 결코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죠. 그분이 말씀하셨기에 우리도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정치적 이득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아요. 하나님의 성품이 이 세상에 공의와 사랑으로 나타나길 바라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는 것이죠. 선지자 미가는 이 변치 않는 진리를 이렇게 노래했어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이건 제안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초가 되는 거룩한 요구입니다.

부흥에서 개혁으로: 참된 옹호의 역사적 뿌리

Covenantal Advocacy: Justice and Mercy in the Modern World

이런 생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에요. 기독교 역사의 깊은 흐름 속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죠. 서구 문명의 진정한 사회적 변화는 세속적인 정치 이론이나 정부의 발표에서 시작된 적이 거의 없어요. 대신, 뜨거운 영적 각성과 성령의 역사 속에서 터져 나왔죠. 예를 들어, 미국의 초기 여성 인권 운동이나 노예제 폐지 운동도 정치권이 아니라 ‘제2차 대각성 운동’이라는 거대한 복음주의 부흥 운동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중심에는 변호사 출신의 전도자 찰스 그랜디슨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가 있었죠.

19세기 피니의 부흥 운동은 단순히 개인의 회개에 머물지 않았어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영혼이라면, 세상의 구조적인 불의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일깨워 줬죠. 그는 미국 사회 개혁의 DNA를 다음과 같이 새로 썼습니다.

* 여성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기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며 당시의 문화적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 여성과 흑인 학생이 백인 남성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혁신적인 학교인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을 세워 교육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 개인의 구원을 노예제 폐지와 여성 인권 신장이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행동과 연결했습니다.

피니와 초기 개혁가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는 건 부차적인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밖으로 표출된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저희 맨해튼 코너스톤 역시 그 역사적 발자취를 그대로 이어가며 **’언약적 옹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자취: 삶으로 증명하는 정의와 자비

Covenantal Advocacy: Justice and Mercy in the Modern World

우리의 헌신은 요란하지 않지만 실질적입니다.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는 과정이죠.

맨해튼 코너스톤 장로교회는 시작부터 주거 취약계층(노숙인) 이웃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보지 않아요. 대신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마주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인격적입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이주민 위기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널 때, 저희 공동체는 북유럽의 망명 신청자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 복잡한 법적 절차를 돕고 그들이 인간다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안식처가 되어 주었죠. 이건 유행을 따른 게 아니라, 두려움과 경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언약적 옹호’를 실천한 진심 어린 행동이었습니다.

현재를 항해하며: 원주민 권리를 위한 언약적 옹호

Covenantal Advocacy: Justice and Mercy in the Modern World

현재 저희가 집중하고 있는 사역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전역의 원주민(Native populations)들을 돕는 일입니다. 지적 탐구와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는 교회답게, 이 일은 철저히 학술적·사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단기적인 정치적 구호나 세속적인 활동에 매몰되면,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영적 순전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정교한 학술 연구와 법률적·역사적 조사를 통해 원주민 공동체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지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수탈과 왜곡된 역사 속에 묻혀 버린 기록들을 아카이브에서 찾아내고 인류학적으로 분석하는 고된 작업이죠. 우리는 이들의 문화적 유산을 존중하며, 잊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가 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시대를 초월한 사명을 지키면서도 세상에 소망의 빛을 비추는 세련된 방식의 **’언약적 옹호’**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 행동하는 신앙을 위한 제안

**’언약적 옹호’**는 교회라는 기관만의 숙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라는 부름이죠.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1. **제대로 공부하기:** 막연한 감정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먼저입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넘어 학술적인 자료나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진정한 공감은 정확한 앎에서 시작됩니다.
2. **경청의 연습:** 말하기 전에 먼저 들으세요. 소외된 이웃들을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배워야 할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대하는 겸손한 태도가 옹호의 시작입니다.
3. **신념 있는 사역 지원하기:** 맨해튼 코너스톤처럼 성경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묵묵히 길을 걷는 곳들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과 봉사, 그리고 기도는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4. **일상에서 목소리 내기:** 직장, 이웃, 가정에서 진실을 말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정함을 실천하세요.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로 꾸준히 보여주는 증거가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냉소가 당연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언약적 옹호’**를 실천한다는 건, 이 땅에 이미 임하기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 나라의 메아리가 될 거예요. 언젠가는 냉소가 오히려 미친 짓처럼 보일 날이 올 겁니다. 우리의 헌신은 헛된 꿈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응답이니까요.

이 비전에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맨해튼 코너스톤 장로교회의 사역에 더 깊이 동참해 보세요. 우리의 지성과 영성이 어떻게 세상의 불의를 녹이는 자비가 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해 현재 진행 중인 활동들을 살펴보고, 이 귀한 여정에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