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ness of Christ: Finding Redemption in the Church

온통 외로움이 공기처럼 떠다니고 경제적으로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는 게 그저 신학 책에나 나오는 추상적인 이상일까, 아니면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현실에서 정말 누릴 수 있는 실재일까 하고 말이죠. 우리는 지금 심각한 상실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도덕적인 궤적이라기보다 마치 끝없는 관료주의라는 쳇바퀴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나만의 방’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한때는 우주의 근간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있다고 믿었던 소속감, 유산,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공간 말이에요. 현대 사회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부동산 압류(Foreclosure) 같은 경제적 사건을 넘어 영혼의 압류 상태가 도처에 널려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마치 룻처럼 내 것이 아닌 밭의 가장자리를 서성이며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렇게 묻곤 하죠. ‘이 소외된 자들에게도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있을까?’ 하고요.

오늘날 신앙인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대개 주일 아침의 거룩한 예배와 화요일 오후의 고단한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옵니다. 승리를 노래하지만, 정작 우리 어깨 위에는 도저히 갚을 길 없는 빚의 무게가 차갑게 얹혀 있습니다. 상속자라고 들었지만, 실제 삶은 고아와 다를 바 없죠.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가 마주한 위기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감상적인 위로나 심리적인 대처 기제가 아니라, 고대 히브리의 ‘고엘(Goel, 기업 무를 자)’ 제도에 뿌리를 둔 법적이고 존재론적인 실재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으려면, 구원이란 것이 그저 공중에 떠다니는 안개 같은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동산 권리증(Deed)의 명의가 이전되는 일이며, 공간을 되찾는 일이고, 잃어버린 이름을 회복하는 아주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The Fullness of Christ: Finding Redemption in the Church

소속의 절차, 그리고 ‘고엘’이라는 존재

이스라엘의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는 개념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법적 직분인 ‘고엘(Goel)’, 즉 기업 무를 자를 통해 예표되었습니다. 이 역할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막연한 선의나 친절함에서 나온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집에 있는 그 어떤 ‘방’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 어떤 가문도 끊기지 않도록 설계된 아주 엄격하고 구조적인 안전장치였죠. 하나님의 경제(Economy of God) 안에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한 유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율법, 특히 레위기 25장은 길을 잃은 자가 다시 발견되고, 팔려 나간 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를 보리밭에서 일어난 목가적인 로맨스, 이를테면 청동기 시대의 ‘운명적인 만남’ 정도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읽는다면 그 안에 담긴 치열한 법적 드라마를 놓치게 됩니다. 룻은 혈통으로는 이방인인 모압 여인이었고, 처지로는 과부였습니다. 말 그대로 ‘상속권이 박탈된 자’의 전형이었죠. 그녀가 보아스의 밭에 서 있었을 때, 룻은 그저 구걸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녀는 ‘고엘’을 찾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빚을 이기는 은혜의 승리를 법적으로 집행해 줄 자격을 갖춘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늘의 법적 요구와 땅의 절박한 필요가 만나는 곳 말입니다.

The Fullness of Christ: Finding Redemption in the Church

우리는 흔히 교회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모임 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음악은 좀 더 좋고 커피 맛은 좀 덜한 사교 클럽처럼요.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비전은 훨씬 더 강력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내놓을 밑천이 없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분배되는 장소입니다. 고장 난 우리 삶의 소프트웨어에 ‘구속의 하드웨어’가 설치되는 현장이기도 하죠.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려면, 율법이 구속자에게 요구했던 아주 구체적인 조건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어떤 사람이 ‘고엘’의 직분을 맡으려면 단순히 마음씨 좋은 이웃인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세 가지 ‘하드웨어’적인 조건을 갖춰야 했죠. 이 조건들은 성육신 교리와 그리스도의 충분성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는 비계(Scaffolding, 건축 시 설치하는 가설 지지대)와 같습니다. 이 세 개의 기둥이 없다면, 우리의 소망은 그저 막연한 바람에 불과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