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영적 궤적을 예측하는 데 84%라는 성공률이 존재한다는 사실, 처음 들으면 조금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보험 통계표나 복잡한 주식 매매 알고리즘에서나 볼 법한 무미건조한 수학처럼 보이니까요. 사실 우리는 믿음이라는 게 참 오묘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곤 하죠.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최근 맨해튼의 한 갤러리에서 움직임의 ‘본질’을 포착하려 애쓴 중세 스케치들을 보다가 문득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 삶의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훨씬 전부터 세워둔 보이지 않는 가설물(비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요. 우리는 흔히 신앙 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처럼, 혹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나는 영혼의 위기처럼 일어난다고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종교적 지속성이라는 ‘기계 속의 유령(ghost in the machine, 보이지 않지만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논리)’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요.
요즘 부모님들, 특히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전문직 종사자로 살아가는 분들 사이에는 아이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있습니다. 모든 전통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현대 사회)’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육아의 ‘투자 대비 효율(ROI)’을 아이비리그 합격증이나 대기업 인턴십으로 따지는 게 당연해진 세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더 깊은 구조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는 훨씬 더 가슴 시린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예배의 언어를 기억할까요? 세상의 공허한 소비주의보다 복음의 이야기에 더 가슴 설레어 할까요?”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가 이끄는 ‘청소년과 종교에 관한 국가 연구(NSYR)’에 따르면, 그 답은 단순히 운에 맡길 일이 아닙니다. 특정 조건만 충족된다면 신앙 유지율은 무려 84%라는 성공률을 보입니다. 이 숫자는 우리에게 위안인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을 줍니다.

언약의 사회학: ‘도덕적 치유적 이신론’을 넘어서
84%라는 성공률을 이해하려면, 먼저 크리스천 스미스가 명명한 ‘도덕적 치유적 이신론(Moralistic Therapeutic Deism, 이하 MTD)’이라는 개념을 마주해야 합니다.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집사님’이나 ‘우주적 상담가’ 정도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기분 좋게 살고 남들한테 ‘착하게’ 굴면 그만이고, 그 외엔 내 삶에 별로 간섭하지 않는 분으로 여기는 거죠. 요즘 미국의 십 대들이 숨 쉬듯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신앙이 그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정의하는 아주 단단하고 분명한 특징이었거든요. 이들은 20대가 되어도 신앙에서 멀어지지 않는 ‘예외적인’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지속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화려한 찬양팀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청소년 사역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부모님의 신앙 생활’이었어요. 부모님이 삶의 모든 순간에 신앙이 녹아 있는 모습, 지적으로도 탄탄하고 일관된 믿음을 보여줄 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신앙을 유지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84%라는 성공률은 소위 ‘매우 독실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독실하다는 건 단순히 주일 아침에 의무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걸 넘어,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자주 기도하며,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침 뉴스보다 더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집안 분위기 말이죠.
